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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크라이나는 국민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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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은 국가가 전쟁의 부담과 혜택을 불공평하게 분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는 서방 동맹국으로부터 25세 미만의 청년을 동원하라는 압력을 점점 더 많이 받아 왔다. 이는 4월에 통과된 동원법이 예상했던 수의 징병자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HIV와 결핵에 감염된 남성도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의료 요건 완화 조치도 별다른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안보위원회의 로만 코스텐코 비서관과 같은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관리도 연령 인하를 촉구했다. 코스텐코는 미국 의회로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가 무기를 요청하면서 자국의 청년은 동원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추진하기를 거부해 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구학적 두려움이다. 장기적인 분쟁에서 청년을 대량으로 희생시키면 우크라이나는 더욱 암울한 미래에 직면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인구 감소로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재건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대중의 분노를 두려워한다. 전쟁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우크라이나인의 태도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시민 사회가 전쟁을 생존을 위한 실존적 투쟁이라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거의 3년 간 전면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러한 피로감은 단순히 피로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을 뿐, 이미 존재하던 사회정치적 기반의 균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론 조사, 우크라이나 언론 보도, 소셜 미디어 게시물,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의 혁명과 전쟁의 결과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역학 관계의 일부를 밝혀낼 수 있었다.​

소비에트 이후의 사회 계약

소비에트 이후 국가와 공산주의 이후 모든 국가에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사회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등장했다.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축소된 것이다. 즉, 국가는 국민을 돕지 않지만, 그 대가로 국가가 국민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2004년과 2014년의 극적인 마이단 혁명으로 정치가 활발해졌다. 이 봉기로 생긴 기회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과두 정치가, 중산층 전문직, 외세)이 반복적으로 이용했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 사회의 상당 부분이 배제되고 그들의 이익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했다.

2022년 이전에는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은 이 상황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다. 국경이 개방되어 수백만 명이 이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60만명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우크라이나는 해외로 이주한 국민의 수가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국가가 되었다. 이주민의 송금은 우크라이나에 남은 사람들이 무난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2020년, 데니스 슈미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15년 안에 연금을 지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수년 동안 국가 역량의 감소와 정체된 발전 정도에 국민은 놀라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달러를 저축하고 이민을 시도해야 한다는 또 다른 신호였다.

전쟁으로 이미 약해진 사회적 계약은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의 삶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가 갑자기 국가의 생존을 위해 희생시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러시아의 초기 침공 계획이 실패한 후, 국민 단결의 물결로 자원 열풍이 일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국가가 전쟁의 부담과 혜택을 불평등하게 분배하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이 드러났다. 사회의 일부 계층이 물질적 또는 정치적 이익을 얻는 동안, 다른 계층은 불공평한 희생을 감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인구의 상당수에서 소외감이 커지고 있다.

전쟁에 대한 열기가 식어가는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정부 관료는 국민에게 자립에 대한 메시지를 쏟아 붓고 있다.

2023년 9월, 옥사나 졸노비치 사회정책부 장관은 국민에게 자신을 “아이”가 되게 만드는 혜택에 의존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졸노비치 장관은 국민이 사회 지출 삭감을 수용하고 “자유로운 수영 선수”로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새로운 사회 계약”을 제안했다.

2024년 9월,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12%에 달함에도 2025년 최저 임금과 사회 보장 지급액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동기 부여의 위기

전쟁의 3년째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이처럼 약한 사회적 계약의 결과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실존적 전쟁 수사가 더 이상 대다수 우크라이나인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인터뷰 대상자 중 한 사람의 말에서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군대를 위한 비살상 군사 장비(드론이나 다른 무기는 제외) 기금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국가가 전쟁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완전히 실패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왜 이 전쟁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전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모든 야망을 포기하거나, 정체성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이주를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결국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는 태도는 지난 1년 동안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도 볼 수 있다. 여론 조사에서 침묵하는 다수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4년 4월의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10%만이 자신의 대부분 친척이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6월의 조사에 따르면, 새로운 동원법에 대해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32%에 불과했고, 52%는 반대했으며, 나머지는 답변을 거부했다.

7월의 한 여론 조사에서, “동원령은 사망자 수 증가 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최전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제 동원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7%에 불과했다.

또 다른 7월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징병을 피하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9%에 불과했다.

설문 조사에서 일관된 패턴이 보인다. 징병의 지속 또는 강화를 지지하는 사람은 인구의 약 3분의 1이다. 상당수의 소수가 응답을 회피하고 있으며, 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는 “모르겠습니다”라는 답변이 많다는 사실로 반영된다. 나머지는 공개적으로 동원을 거부한다.

징병제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승리” 여론 조사 결과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여론 조사에서 다수의 응답자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1991년 국경 내의 모든 영토를 되찾고 러시아에 양보를 거부하는 것으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없다.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완전한 승리”를 원하지만, 이 목표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으며,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공감한다. 그래서 대다수는 가능한 한 빨리 평화 협상을 지지한다.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은 징병 기피율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4월 징병법에 따르면, 징병 대상인 모든 남성은 7월 17일까지 자신의 세부 사항을 징병 사무소에 제출해야 했다. 마감일까지 4백만 명의 남성이 제출했고, 6백만 명의 남성이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부 정보를 입력한 사람들 중 50~70/80%가 의료 또는 기타 이유로 합법적으로 동원 면제를 받을 수 있다고 다양한 관계자가 말했다.

한편, 텔레그램에는 특정 지역에 동원 담당관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룹과 채널이 급증했다. 일부 회원이 체포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동원 당국은 지금까지 50만 명의 남성을 징병 회피 혐의로 조사했다.​

사회경제적 긴장

징병 회피는 동기 부여의 위기의 정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쟁이 계급 격차를 얼마나 심화시켰는지도 보여준다.

지난 1년 동안, 군 복무를 면제하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공무원에 대한 뉴스 보도가 정기적으로 나왔다.

10월 초에 공개된 한 사례에 따르면, 집권당인 인민의 봉사당을 대표하는 지방 의회 의원이자 의사는 장애자 명부를 통해 병역을 회피할 수 있도록 뇌물을 받아 재산을 축적했다. 현지 경찰은 현금 6백만 달러를 발견했으며, 그의 가족이 달러 더미가 있는 침대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불과 2주도 되지 않아 우크라이나 언론은 의료 관계자가 근무하는 지역의 거의 모든 검사가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이 논란의 여파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부 공무원을 해고하고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하는 기관을 폐쇄했다. 고위 공무원이 이러한 부패한 계획을 눈치채지 못한 이유에 대한 불편한 질문은 무시되었다.

의료 면제나 국경 경찰에 수천 달러의 뇌물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에서 위험한 도피를 시도한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국경 순찰대의 상당 부분이 “평화로운” 서부 국경에 배치되어 있다.

2022년 이후로 45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루마니아와 헝가리 국경에 있는 티사 강으로 도피하려다 익사했다. 또한, 국경을 넘으려다 국경 순찰대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례도 여러 건 있다. 3월에 국경 순찰대원이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티사 강에 총을 난사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유명해졌다. 그는 “이 강을 건너는 데 1000달러를 지불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한 번에 수십 명의 남성이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한 사례가 있다. 일단 잡히면, 이 “부끄러운 병역 기피자”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고, 캡션에는 그들이 전방으로 보내진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따라서 최전선에 배치된 사람들은 거의 너무 가난하거나 운이 없어서 징병 담당관에게 잡혀왔다. 9월 중순 포크로프스크 근처의 최전선을 방문한 후, 마리아나 베주흘라 의원이 말했듯이, 그곳의 사람들은 주로 뇌물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11월 TV 인터뷰에서 한 군 사령관은 최전선에 배치된 사람들의 90%가 “강제 동원된 마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군 장교들은 종종 이러한 “버스로 온” 부대가 질이 낮다고 불평한다. “버스로 왔다”는 말은 징병 연령의 남성들을 거리에서 끌고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온 것을 뜻한다. 이러한 차량에 대한 수백 건의 방화 공격이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 빈곤한 우크라이나 남성에게 가해진 이러한 폭력적인 강압의 영향으로 최전방의 사기는 극도로 낮다. 2024년 11월 현재, 자원군과 동원군의 비율은 1:4이다.

동원된 군인의 대규모 탈영으로 지속적인 퇴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포크로프스크 근처에서 러시아군 진격을 막기 위해 배치되기 전에 155여단 소속 수백 명의 “버스로 온” 군인이 탈영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7월에 올라온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한 우크라이나 기자는 징집된 동료들 사이에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한탄했다. 그는 함께 복무한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한 시골 출신이고, 다른 것보다도 정부 부패를 논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썼다. 애국심을 일깨우려는 그의 시도는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말한다. 그들의 30, 40, 50대에 국가는 칼라시니코프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내가 왜 애국자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그는 말했다.

이 병사들은 전쟁의 현실에 대해 충분히 안다. 그들은 텔레비전에서 전선의 영상을 보는 데 지친 민간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국심에 대한 의무를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기 문제는 동원 및 배치 기간 동안 신병들이 겪는 학대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매달 동원 기지에서 누군가가 구타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12월에는 언론이 우크라이나 군대 내부의 체계적인 고문과 갈취를 폭로했다.

9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장교 유수프 왈리드는 장교의 90%가 동원된 병사를 “동물처럼” 대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왈리드는 1980년대와 90년대 태어난 세대는 애국심에 있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오직 경제적 생존뿐이라는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의 사회 계약이 국가로부터 “부조”를 요구하는 대신 개인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도록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사 엘리트’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은 최전방에서 싸우도록 강요당하지만, 키예프와 리비우에서는 비교적 보호받고 편안한 삶을 사는 소수의 부유한 도시인이 있다. 활동가, 지식인, 언론인, NGO 활동가로 구성된 이 ‘전사 엘리트’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애국적인 내러티브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 엘리트 집단의 많은 구성원은 최전선의 전투에 동참하는 것은 꺼린다. 많은 저명한 애국 언론인과 활동가는 대규모 동원을 촉구하는 한편, 자신들은 의료 또는 기타 사유로 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 중에는 세 자녀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면제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군사 전문 기자 유리 부투소프와 “시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장애자 면제를 신청한 저명한 민족주의 활동가 세르게이 스터넨코가 있다.

6월에 외국 자금을 받는 133개의 NGO와 기업의 직원은 공식적으로 동원 면제를 받았다. 이들 단체의 대부분은 중요한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관여하지 않는다.

전면적인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며 전쟁에 찬성하는 논리를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우크라이나의 애국적 지식인은 모든 부패와 국가의 실패를 과거의 소비에트 국가주의에 돌리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해결책은 단순히 국가의 역할을 계속 축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긴축 정책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 특히 전쟁 중에는 더욱 그러했다. 또한, 긴축 정책은 명시된 목표에 있어서도 크게 실패했다.

서방 동맹국의 지원을 받는 고액 연봉의 “개혁” 공무원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패 스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개혁” 기업은 주로 국영 철도 회사인 우크라이나 철도청과 같이 나머지 직원에게 극히 적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노동자를 해고함으로써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부패 방지라는 명분은 계층 격차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일반 시민은 종종 “부패 방지 감시인”과 국영 기업 이사회의 젊은 “개혁” 이사진이 받는 높은 연봉에 대해 농담한다.

부패 방지는 국제 자본의 사업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정당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려 사항에 따라 추진된 국영 기업 해체는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소비에트 시대 군사-산업 단지를 심각하게 약화시켰고, 이는 전쟁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국민을 비난한다. 우크라이나의 유명한 민족주의자 드미트로 쿠카르추크는 지난 7월 우크라이나의 어두운 군사적 전망에 대해 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우크라이나인보다 “코홀(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인을 지칭하는 ‘식민지’라는 비하어)”이 더 많다고 한다. 그는 “코홀”을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위해 싸우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쿠하르추크는 극우 정당인 국민군단의 지도부에 속해 있으며, 아조프 운동과 연계된 여단의 대대를 지휘하고 있다. 그의 표현이 극단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수사법은 독특하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소련 붕괴 이후의 민족-자유주의 시민 사회와 지식인 사회를 지배해온 내러티브를 반영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끝없이 반복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다. 그들은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사람들을 “가축”이라 부른다.

이 경멸적인 용어는 엘리트의 관점에서 “소비에트”의 습관에 집착하고, 개인의 안녕을 우선시하며, 국가의 복지를 중시하고, 국가 건설을 위한 자기 희생을 꺼리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러한 담론은 민족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계급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노동자, 빈곤층, 연금 수급자 등 많은 인구 집단을 반동적 사회 진보의 장애물로 묘사하는 한편, 좁은 의미의 자칭 국가 선봉대를 찬양한다.​

단절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점점 더 커지는 어려움은 러시아의 압도적인 힘이나 서방의 부족한 지원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NATO 같은 강력한 동맹국의 군사적, 재정적 지원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이도, 훨씬 더 강력한 적을 극복한 사례가 많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베트남과 1979년부터 2021년까지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1789년 이후 프랑스 혁명과 1917년 이후 러시아 혁명을 보라. 이 두 혁명은 다른 강대국의 반혁명적 개입을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이 혁명 운동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다.

사회 혁명과 민족 해방 투쟁은 여러 번에 걸쳐, 모든 역경 속에서도 더 강하고 더 단결된 국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소련의 억압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민족 해방 운동, 반체제 지식인, 마이단 혁명, 돈바스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한 저항 운동에 힘입어 부상한 국가라는 지배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 패턴에 부합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2022년 대규모 침공을 물리친 우크라이나 국민의 단합과 회복력에 의해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같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단순히 현대화 성공과 이후 소련 혁명의 퇴보로 형성된 많은 소비에트 연방의 궤적 중 하나이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지역의 다른 많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립 이후 국가는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약탈적이고 매국적인 엘리트가 점령한 것이다.

이러한 실패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에게 의미 있는 기회와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국가는 국민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심오한 사회정치적 단절로 분열된 국민을 동원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 통합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전쟁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국내외에서 그들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및 지식인 엘리트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국가 발전의 응집력 있는 프로젝트는 없다. 이러한 단절은 국가를 발전시키는 공동의 목적에 대한 생각을 약화시킨다.

분열된 우크라이나를 진정으로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감정은 두려움이다. 국가 건설이라는 고상한 이상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파괴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다. 이러한 두려움은 최전선이 가까워지면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불안정한 난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끊임없는 포격과 거리 전투를 피해 지하실에서 몇 달을 견뎌야 하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집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무법 상태, 약탈, 살인, 성폭력 등 군사 점령이 수반하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말이다.

만약 우크라이나 국민이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연합, 즉 공통된 열망보다는 공통된 두려움에 의해서만 단결되어 있다면, 이러한 두려움이 변화하고 경쟁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두려움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침략으로 인해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점점 더 이기기 어려워 보이는 전쟁에서 강제 징병을 견디고 포탄받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비교된다.

점점 더 시민 사회와 정부가 자유와 인권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멀어지는 상황에서, 점령 하의 억압에 대한 두려움과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러시아인에 의해 코홀로, 또는 자국의 민족주의자에 의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만쿠르트(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린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로 모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움직이게 하지만,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50대 우크라이나 남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전선이 고작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러시아군의 포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고향인 하르키우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더 안전한 지역으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남아서 이웃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겁쟁이가 아니라 애국자이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이, 그는 “지금의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을 생각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강요된 우크라이나를 위해 죽을 생각은 없다 …이곳은 나의 나라이지만, 나의 국가는 아니다.”​

원문출처: Why is Ukraine struggling to mobilise its citizens to fight? | Russia-Ukraine war | Al Jazeera

번역: 황정은 (국제전략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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