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한미간 관세협상이 시작된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의 구도이다. 트럼프의 관세공격과 향후 재개될 비관세공격을 감안할 때 한미FTA 체제는 이로써 그 효용에 대한 심각한 의문은 불가피하다.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관세부과는 그 자체로 기존 FTA를 포함 일체의 통상규범에 대한 공격이지만 이제는 마치 ‘뉴노멀’처럼 간주된다.
2. 한국은 이른바 ‘우선협상국’으로 일본 다음으로 불려 가면서, 이 모든 것이 ‘기정사실’로 간주되고, 구조적인 수세의 위치에서 협상을 강요당했다.
3. 그리고 40여일 시한의 ‘임시정부’에 불과한 한덕수 대행의 정치적 ‘야심’때문에 국익이 걸린 협상이 자칫 도구로 전락, 졸속협상의 우려마저 제기된 상황이다.
4. 현재 한국측이 말하는 쟁점은 무역불균형, 조선업, LNG등이다. 모든 쟁점이 전적으로 미국의 이익에서 나온 것들이다. 한국은 구도상 수세적 순응으로 일관하고 있고 준비된 이른바 ‘카드‘는 사실상 없다.
5. 무역불균형 문제는 최근 3-4년간 급증한 대미무역 흑자를 말한다. 하지만 이 흑자를 분석해 보면 바이든시절 윤석열이 ’기타하나 동전 한 닢‘받고 나선 ’프렌드쇼어링‘의 결과, 급증한 대미직접투자FDI의 결과이다. 즉 미국에 추가 혹은 신규투자한 한국 기업이 미국내 생산을 위해 ’수출‘한 중간재(부품, 원자재등)와 자본재(기계, 설비등)의 비중이 약 60%전후로 추정된다. 트럼프는 이 ’프렌드쇼어링‘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을 무역 ’적자‘로 간주, 고관세를 부과하고 이제는 ’리쇼어링’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내무역’의 결과이기도 한 대미무역 흑자의 급증은 대중무역적자의 급증과 동전의 양면이다. 한국은 이제 근 20여년만에 경제 성장의 견인차역할을 한 대중국 무역에서 적자국으로 전환되었다. 요컨대 허울뿐만 대미흑자의 댓가로 대중적자라는 댓가를 치뤘고, 이제 이를 무역불균형이라 부르는 트럼프의 관세공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 여기서 2가지 무역이론적인 지점을 지적해 둬야 한다. (1) 잘 알려진 ‘트리핀의 딜레마’에 근거해 볼 때 미국의 무역적자는 달러기축통화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즉 무역적자는 달러패권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2) 세계화는 끝났지만 그 세계화된 공급망은 여전히 작동한다. 예컨대 아이폰 1대에는 약 20개국이 공급망에 관련되어 있다. 나라 대 나라의 교역량에 기초한 무역수지는 실물경제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6. 조선업이 마치 ‘미끼상품’처럼 작동한다. 하지만 이는 지정학적 의미에서 대표적인 ‘해양세력’이었던 미국의 조선업이 사실상 붕괴된 그래서 미국의 필요에서 출발한 것이다. 중국 다음인 한국의 조선업을 ‘조차’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미국 해군 전함의 유지보수수리MRO 사업이 ‘미끼’로 작용한다. 특히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2개 기업의 미 군수지원함 MRO사업 수주가능성이 마치 큰 특혜인 것처럼 과포장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조선업의 인력, 기술 그리고 장비등을 미국으로 가져와 붕괴된 미 조선업 부활의 모멘텀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 하겠다.
7. 미국은 한국의 4번째 LNG수입국이다. 2023년 기준 약 12.3%비중이고 , 1위국인 호주의 약 절반이다. 그리고 특히 사업성이 전혀 불투명한 데다 2030년에 가서야 공급될 지, 안될 지 모를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 사업이 문제다. 미국내 프로젝트 파이낸싱 조차 안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를 ’머니 머신‘인 한국돈을 가지고 대신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경제성으로 따지면 바로 코 앞에 있는 사할린 가스가 먼저다. 지금도 한국의 가스수입의 4.6%가 러시아 산이다.
8.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문제는 이 번 협상과 분리하겠다고 했지만, 일본의 선례로 보아 그것은 우리만의 희망사고일 것이다. 한국의 방위비는 2026년부터 1.5조원으로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에 의거 협상완료된 사안이다. 간접지원까지 합산하면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은 총액의 66-77%까지 된다. 이미 미대선유세중 트럼프는 ’10배‘를 이야기 한 바 있다.
9.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매우 유의해야할 대목은 트럼프측에서 말하는 방위비는 주한미군 주둔비에 관한 것 이상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는 ’빅픽쳐‘의 일부일 뿐이라는 말이다. 미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 마이런Miran이 누차 강조하듯 관세는 ’협상유도용 레버리지‘이다. 이 점만 보면 오늘 한국을 백악관 트럼프 집무실 책상앞에 불러내 앉혔다는 점에서 미국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그리고 마이런이 인용한 월가 애널리스트 포차르Poszar의 말처럼 안보는 ’공공재‘, ’자본재‘ 그리고 ’철조망‘이다. 즉 공공재이므로 재무성채권을 사야하고, 자본재이므로 장기 곧 100년물 채권을 사야하고, 그래야 ’철조망‘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주한미군 주둔비와는 다른 개념이다. 일종의 ’보호세‘다. 미국이 지켜주니 ’보호세‘ 즉 돈을 내라는 말이다.
이 번 협상에서 ’보호세‘개념의 전혀 새로운 방위비 개념이 어떻게 제시될 지 모르나, 일본의 선례에서 보건대 트럼프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한미군 주둔비 따위 ’쪼잔한‘ 것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큰 개념이다. 이를 나는 ’통상-안보연계전략‘이라고 부른다.
10. 보호세는 향후 100년물 ’센츄리 본드‘ 미재무성 채권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고관세로 인한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관세-환율 혼합Mix 툴tool을 구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직접 ’비관세장벽‘ 제1호로 ’환율조작‘을 언급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향후 1980년대 일본의 ’플라자합의‘처럼 미국의 강달러를 약달러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환율합의 틀로서 ’마라라고Mar-a-Lago 합의‘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약달러를 위해 트럼프가 파월 연준의장 사퇴를 강요하는 것은 이자율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이자율을 1%하락시키면 미국채 부담이 5,000억달러 감소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달러기축통화 즉 달러패권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패권의 당연한 비용인 ’강달러-무역적자‘를 일방주의적으로 제거하겠다는 것이 통상-안보 연계전략의 핵심인 셈이다.
11. 미국과 ’방과후 옥상‘식으로 일대일 협상에서 성과를 거두기는 사실 무망한 일이다. 그것도 준비된 어떤 ’카드‘도 없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군다나 여기에 ’임시정부‘ 대행의 정치적 동기가 결부된다면 더 할 것이다. 미국이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결정한 데에는 특히 미중산층의 모기지론, 자동차할부등과 연계되어 있는 미국채 10년물 금리 폭등이 아무래도 주원인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폭등에 과연 중국의 미국채 매도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 지 당장 확인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이 말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 지를 간파할 수 있다는 의미다.
12. 미중 무역전쟁의 전망을 두고, (1) 3배가량 더많이 수출하는 흑자국이 불리하다는 분석과 (2) 빅테크에 주롱 의존하는 미국경제가 미국보다 2배 큰 중국시장에 디커플링될 때의 빅테크의 수익성악화로 인해 미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분석등이 존재한다. 한가지 중국이 트럼프1기의 학습효과의 결과 진즉부터 무역다변화등을 통해 관세전쟁을 준비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국의 대미수출이 중국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수준이다. 감당할 만하다는 말이다. 중미간 무역전쟁은 경제적 소모전이다. 군사적 소모전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질보다 양이 즉 시장의 크기가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13. 한미 관세협상에서 한국은 구조적으로 열위다. 가장 잘 된 협상결과라고 하더라도 ’원래 없던!‘ 관세를 깍아 주는 것인데, 이 또한 미국입장에선 미소비자 후생이 최대치를 찍는 일방적 관세부과 구간인 20%-50%대 구간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50%이상을 넘어가면 소비자 후생은 감소한다고 되어 있다. 이 번 관세협상은 현재의 조건이 불변이라면 잘해봐야 무엇을 얻는 협상이 아니라 피해를 조금 덜어 내는 협상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의 협상팀은 싸울 의지도, 준비도 안 되어 있다.
13. 따라서 (1)현 협상팀이 차기정부에 부담을 지우는 어떤 결정도 해선 안된다. (2) 현 협상팀의 역할은 시간을 버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3)차기 정부의 협상팀은 판을 전혀 새롭게 짜야 한다. 한미협상은 미중협상에 의존적이다. 미국의 전략적 타겟은 중국이다. 따라서 한국을 미국편에 줄세워 중국을 고립시키고 나아가 기타국에 대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 미국의 대일, 대한 협상의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한국의 ’팔을 비틀어도 부러뜨려서는‘ 안된다. (4)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미국내 사정을 볼 때 시간이 반드시 트럼프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5) 결국 미중, 미EU 협상에 보폭을 맞추면서 최대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한국의 협상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미국의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 있는 수십개 비관세장벽(쇠고기 30개월 이상, 위치정보등)에 대응할 카드도 필요하다. 이 번 관세협상이 관세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후 미국의 통상정책까지 내다보면서 움직여야 한다.
글: 이해영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 다극화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