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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한미대북정책협의체> 파행출범에 대한 연구자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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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자 : 이해영 한신대교수, 다극화포럼이사장,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회의 의장, 문장렬 전 국방대교수, 이혜정 중앙대교수, 원동욱 동아대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남기정 서울대교수

지난 12월 16일 대북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한미간 고위급 “협의체”의 첫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상 대북정책의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불참을 선언하는 파행을 겪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부처간 정책주도권 갈등’이니 혹은 ‘자주파-동맹파’의 해묵은 충돌의 재현이니 하는 식의 프레이밍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에 이 분야를 기나긴 시간 연구하고 토론해 온 연구자들은 뜻을 모아 우리의 입장과 생각을 밝히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지금의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세계는 미국 일극 패권이 지배하던 세계화 시대가 아닙니다. ‘다극화’, ‘다중심화’라는 메가트렌드로 세계는 갈피를 잡기 힘든 혼돈과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에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비상하고 섬세한 외교감각이 요구됩니다. 이 새로운 시대의 키워드는 그 무엇보다 ‘주권’과 ‘국익’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주권에 기반해서 무엇보다 국익 특히 우리의 ‘핵심이익’에 충실할 것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정책공간’ 즉 전략적 자율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이 협의체가 과연 이 시대의 새로운 과제와 도전에 적합한 지를 묻고자 합니다. 2018년, 남북관계의 모든 새로운 시도를 좌절시킨 <한미워킹그룹>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미국이 요구하고 한국이 합의해 만든 이 워킹그룹으로 인해 근 3년에 걸쳐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한국의 이익이 종속되고 말았습니다. 남북관계는 붕괴되다시피했고 그 결과 우리의 안보이익은 훼손되었습니다. 이러저러하게 이름만 바뀌었지 이 협의체의 본질은 전적으로 동일하다고 우리는 판단합니다.

둘째, 외교부는 이 협의체의 근거를 한미간 <조인트팩트시트>상의 “양 정상은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는 구절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외교부만이 이 일의 적임자란 의미는 전혀 아니라 하겠습니다. 흔히 말하듯 외교부의 ‘체질’상 남북공조보다 한미공조가 절대 우선시될 것이라는 점 또한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일각에선 ‘매국’논란까지도 제기합니다. 결국 대북정책 ‘조율’을 위한다는 이 협의체는 조율보다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거쳐 가는 잠깐의 정류장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판단합니다.

셋째, 이번 협의체 미국측 회의 참석자의 면면을 보는 순간 우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인적 구성으로 볼 때 협상대표격인 미대사대리를 비롯 전략, 실무 고위급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대행, 국무부 정보분석국(INR)의 고위분석가, 국무부 대북전담 실무책임자, 국방부의 한국담당 책임자, 대북제재 법률자문관등 외교, 군사, 정보, 법률등 대북정책의 모든 영역에 걸쳐 한국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통제, 관할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민주권정부의 독자적인 대북정책의 공간 자체를 출발점에서부터 미국의 그것에 맞춰 ‘재정렬’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북대화, 인도적 지원, 대북 메시지등 어느 하나의 영역도 빠짐없이 아예 초기에 확정짓겠다는 말입니다. 이로써 한국의 자율적 대북 정책공간은 사실상 말살되는 것입니다. 과거 워킹그룹이 국무부중심이었던 반면, 이 번 협의체는 국방부, 주한미군 전략기획담당, INR 고위분석가, 법무실까지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한국 대북정책의 가부(可否)에 관한 간섭‧통제가 이제는 사전적인 통합‧통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워킹그룹이 한국정부의 속도를 문제삼아 사후제동에 나섰다면, 이제는 아예 그 범위와 방향 전부를 원천적으로 통제하겠다고 나섰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외부에 의해 통제된 대화에 북한이 호응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입니다.  

넷째, 국민주권정부는 한편으로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목표의 균형과 조화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 번 협의체의 기형적 출발은 불길한 예측을 자아냅니다. 외교안보국방라인의 구성도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현재 남북한은 중러, 미일과 군사동맹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실로 상호확증파괴 즉 ‘공포의 균형’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한 발 앞에 무엇이 있을지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제동장치는 ‘평화공존’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한국의 핵심이익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향후 과제는 전략적 힘의 균형을 군비경쟁이 아닌 방향으로 축소유지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공존의 사회적, 정치적 기초를 공고히 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하지만 협의체는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남북관계에는 일반의 외교와는 다른 구조와 논리가 작동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들이 성명을 통해 “남북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은 그 자체로 아주 온당한 지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협의체를 둘러싼 이견을 무슨 밥그릇싸움식으로 비하하는 것은 이 사안이 한국의 생사존망이 걸린 문제임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 관련 학계의 연구자 일동은 이제 뜻을 모아 다음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첫째, 헌법과 정부조직법에도 어긋나는 ‘한미대북정책협의체’는 이 시점에 긴급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기구입니다.
둘째, 남북 평화공존은 우리의 번영과 생존을 위한 타협불가능한 핵심이익입니다.
셋째, 국민주권정부는 인적쇄신을 포함해 막힌 남북관계 돌파를 위한 담대한 구상과 실천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넷째, 국민주권정부는 또한 대미편중외교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균형외교를 지향해야 합니다.

 2025년 12월  
 <한미대북정책협의체>를 우려하는 연구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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