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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세계경제포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기조연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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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래리.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은 기쁨인 동시에 의무입니다. 캐나다와 세계가 겪고 있는 이 중대한 순간에 말입니다.

오늘 저는 세계 질서의 단절, 하나의 안락한 허구의 종말, 그리고 가혹한 현실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정학, 즉 주요 강대국의 지정학이 어떠한 한계나 제약도 받지 않는 현실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다른 나라들, 특히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들이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들 국가는 인권 존중, 지속 가능한 발전, 연대, 주권, 그리고 각 국가의 영토 보전과 같은 우리의 가치를 포괄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덜 강한 자들의 힘은 정직함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강대국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규칙에 기반한 질서는 쇠퇴하고 있으며,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내해야 할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현실 말입니다.

투키디데스의 이 격언은 불가피한 것으로, 국제관계의 자연적 논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제시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 앞에서 많은 국가들은 무사히 넘어가기 위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순응이 안전을 보장해주길 바라며 타협하려는 강한 유혹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무엇입니까?

1978년, 훗날 대통령이 된 체코의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은 「무력한 자들의 힘」이라는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는 그 글에서 간단한 질문을 던집니다. 공산주의 체제는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했는가?

그의 대답은 한 채소 상인에서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 이 상인은 가게 창문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팻말을 내겁니다. 그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문제를 피하고, 순응을 표시하고, 무사히 지내기 위해 그 팻말을 내겁니다. 그리고 모든 거리의 모든 상인이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 체제는 폭력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속으로는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 거짓을 수행하는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유지됩니다.

하벨은 이를 “거짓 속에서 사는 것(living within a lie)”이라 불렀습니다.

체제의 힘은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행동하려는 의지에서 나오며, 그 취약성 또한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수행을 멈추고, 채소 상인이 팻말을 내리면, 그 환상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제 기업과 국가들이 그 팻말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수십 년 동안 캐나다와 같은 국가들은 우리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라 불렀던 체제 아래에서 번영해왔습니다. 우리는 그 제도에 참여했고, 그 원칙을 찬미했으며, 그 예측 가능성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가치에 기반한 외교 정책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국제 규칙 기반 질서의 이야기가 부분적으로는 거짓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강한 자들은 필요할 때면 예외를 적용받았고, 무역 규칙은 비대칭적으로 집행되었으며, 국제법은 가해자나 피해자의 정체에 따라 서로 다른 엄격함으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허구는 유용했고, 특히 미국의 패권은 공공재 제공, 해상 교통로의 개방,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 집단 안보, 분쟁 해결 틀에 대한 지원을 제공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문에 팻말을 걸어두었습니다. 우리는 의식에 참여했고, 수사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대체로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이 거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환이 아니라 단절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금융, 보건, 에너지, 지정학적 위기들은 극단적인 세계 통합의 위험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강대국들이 경제적 통합을 무기로 사용하고, 관세를 지렛대로 삼으며, 금융 인프라를 강압의 수단으로, 공급망을 악용 가능한 취약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통합이 상호 이익의 원천이 아니라 종속의 원천이 되는 순간, 그 거짓 속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중견국들이 의존해왔던 다자 제도들 ― WTO, UN, COP ― 집단적 문제 해결의 그 구조 자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국가들은 에너지, 식량, 핵심 광물, 금융과 공급망에서 더 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충동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없고, 에너지를 공급할 수 없으며, 방어할 수 없는 국가는 선택지가 거의 없습니다. 규칙이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을 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결과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냉정하게 보아야 합니다.

요새들의 세계는 더 가난하고, 더 취약하며, 덜 지속 가능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강대국들이 규칙과 가치의 외양마저 버리고 힘과 이익의 무제한적 추구로 나아간다면, 거래적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점점 재현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패권국은 자신들의 관계를 무한히 수익화할 수 없습니다.

동맹국들은 불확실성에 대비해 다변화할 것입니다. 보험을 들고 선택지를 늘리며 주권을 재건하려 할 것입니다. 한때 규칙에 기반했던 주권은 점점 압박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방에 계신 분들은 이것이 전형적인 위험 관리라는 점을 알고 계십니다. 위험 관리에는 비용이 따르지만, 전략적 자율성과 주권의 비용은 또한 회복력에 대한 집단적 투자는 각자가 요새를 짓는 것보다 저렴합니다. 공동의 기준은 분절화를 줄이고, 상호 보완성은 제로섬이 아닌 긍정합을 만듭니다.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에게 중요한 질문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입니다. 더 높은 벽을 쌓는 방식일 것인가, 아니면 더 야심찬 무언가를 할 것인가.

캐나다는 가장 먼저 경종을 들은 국가 중 하나였고, 그로 인해 우리의 전략적 태세를 근본적으로 전환했습니다.

캐나다인들은 우리의 지리와 동맹 가입만으로 번영과 안보가 자동으로 보장된다는 오래된 안락한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접근은 핀란드 대통령 알렉산데르 스투브가 말한 “가치 기반 현실주의(value-based realism)”에 기초합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원칙적이면서도 실용적이기를 지향합니다. 주권, 영토 보전, 유엔 헌장에 부합하지 않는 무력 사용의 금지, 인권 존중이라는 근본적 가치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키되, 진전은 점진적이며 이해관계는 갈리고 모든 파트너가 우리의 모든 가치를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린 눈으로, 전략적으로 폭넓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길 기다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합니다.

우리는 관계의 깊이를 우리의 가치에 맞게 조정하고, 세계의 유동성과 그로 인한 위험, 그리고 다음 단계의 중요성을 고려해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광범위한 관여를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가치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고, 힘의 가치 또한 중시합니다.

우리는 국내에서 그 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출범한 이후, 소득세, 양도소득세, 기업 투자에 대한 세금을 인하했고, 주 간 무역에 대한 모든 연방 장벽을 제거했습니다. 에너지, AI, 핵심 광물, 새로운 무역 회랑 등에 대해 1조 달러 규모의 투자를 신속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10년 말까지 국방비를 두 배로 늘리고 있으며, 이는 국내 산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EU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으며, 유럽 방위 조달 체계인 SAFE에도 참여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4개 대륙에서 12개의 무역·안보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 중국과 카타르와도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인도, 아세안, 태국, 필리핀, 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 협정을 협상 중입니다.

또 하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문제 해결을 위해 ‘가변 기하학’, 즉 가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별로 다른 연합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는 자발적 연합의 핵심 회원국으로서, 1인당 기준으로 가장 큰 방위·안보 기여국 중 하나입니다.

북극 주권 문제에서는 그린란드와 덴마크와 확고히 연대하며, 그린란드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나토 제5조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북유럽·발트 국가들과 함께 동맹의 북부 및 서부 전선을 강화하고 있으며, 장거리 레이더, 잠수함, 항공기, 그리고 현장 병력에 대한 전례 없는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그린란드를 둘러싼 관세에 강력히 반대하며, 북극의 안보와 번영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집중된 협의를 촉구합니다.

복수국 간 무역에서는 환태평양 파트너십과 EU를 잇는 교량을 구축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15억 인구의 새로운 무역 블록을 형성할 것입니다. 핵심 광물 분야에서는 G7을 중심으로 구매자 클럽을 구성해 공급 집중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AI 분야에서는 동맹 민주국들과 협력해 패권국과 초거대 기업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을 피하려 합니다.

이는 순진한 다자주의도, 기존 제도에 대한 의존도 아닙니다. 작동하는 연합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사안별로, 충분한 공통분모를 가진 파트너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는 무역, 투자, 문화 전반에 걸친 촘촘한 연결망을 형성하며, 미래의 도전과 기회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중견국들은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식탁에 앉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메뉴에 오를 뿐입니다.

강대국들은 당분간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시장 규모, 군사력, 지렛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견국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패권국과 양자 협상만 할 때 우리는 약자의 위치에서 협상하게 됩니다.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누가 더 순응적인지를 두고 서로 경쟁하게 됩니다.

이것은 주권이 아닙니다. 종속을 받아들이면서 주권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강대국 경쟁의 세계에서 중간에 낀 국가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호의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결합해 제3의 길을 만들 것인가.

하드 파워의 부상이 정당성, 진실성, 규칙의 힘을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함께 행사하기로 선택할 때 여전히 강력합니다. 이것이 다시 하벨로 돌아가는 이유입니다.

중견국이 ‘진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현실을 명명하는 것입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여전히 광고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그것은 강대국 경쟁이 심화되는 체제이며, 가장 강한 자들이 경제적 통합을 강압 수단으로 사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체제입니다.

둘째,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동맹과 경쟁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한쪽의 경제적 압박은 비판하면서 다른 쪽에는 침묵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창문에 팻말을 걸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옛 질서가 돌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믿는 바를 실제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설명대로 작동하는 제도와 협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압을 가능하게 하는 지렛대를 줄이는 것, 즉 강한 국내 경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정부의 즉각적 우선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국제적 다변화는 단순한 경제적 신중함이 아니라, 정직한 외교 정책의 물질적 토대입니다. 국가는 보복에 대한 취약성을 줄일 때 비로소 원칙적 입장을 취할 권리를 얻습니다.

캐나다는 세계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너지 강국이며, 방대한 핵심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인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기금은 세계 최대이자 가장 정교한 투자자들 중 하나입니다. 즉, 우리는 자본과 인재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는 막대한 재정 역량을 지닌 정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작동하는 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우리의 공적 공간은 시끄럽고, 다양하며, 자유롭습니다. 캐나다인들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헌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정한 세계에서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이며, 단기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 관계를 중시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그에 맞춰 행동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 단절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직함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창문의 팻말을 내리고 있습니다. 옛 질서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애도해서는 안 됩니다. 향수(nostalgia)는 전략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균열 속에서 더 크고, 더 나으며, 더 강하고, 더 정의로운 무언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새의 세계에서 가장 잃을 것이 많고, 진정한 협력에서 가장 얻을 것이 많은 중견국들의 과제입니다.

강대국들은 그들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가장하는 것을 멈추고, 현실을 명명하며, 국내에서 힘을 키우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캐나다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를 공개적이고 자신 있게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 길은 우리와 함께하고자 하는 모든 나라에게 열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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