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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외교: 시진핑이 트럼프를 ‘아두’라 부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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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文史哲) 뒤에 숨긴 중국의 전략적 비수

2026년 2월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에서 시 주석이 인용한 구절의 속뜻을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친서방 언론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선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지 말고, 악이 작다고 해서 행하지 말라.” (不以善小而不为,不以恶小而为之)

본래 중국 외교의 특징 중 하나는 문사철(문학·역사·철학)에 기반한 고전적 소양을 외교 수사(rhetoric)로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의 문화적 자신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직설적인 화법 대신 비유를 통해 상대에게 전략적 압박이나 명분을 전달하는 독특한 소통 방식이다.

지난 2026년 1월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던진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는 문장 역시 그러했다. 이 문장은 특정 고문의 인용은 아니나, 중국 전통의 천명(天命)과 왕도(王道) 사상에 뿌리를 둔다. 당시 시 주석은 미국 주도의 패권 질서를 맹종하지 말고 중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천명처럼 여기라는 수사적 경고를 보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이를 “착하게 살자는 공자님 말씀”으로 받아넘기며 정치적 강도를 순화시켰다. 거창한 역사적 담론을 평범한 도덕적 영역으로 끌어내린 영리한 대응이었다.

반면 이번에 트럼프에게 던진 문장은 이 대통령에게 건넨 메시지보다 한층 묵직하고 살벌하다. 이 구절은 진수의 정사 《삼국지》 <촉서·선주전>에서 처음 언급된 이래 《소학》에 수록되고 각종 가훈에 인용될 정도로 전근대 중국 사상과 교육의 기초 요소다. 현대 중국에서도 2014년 시 주석이 반부패 강연에서 인용할 만큼 지성계와 일반 시민 모두에게 매우 친숙한 내용이다.

 ‘아두(유선)’가 된 트럼프와 무너지는 촉나라(미국)

해당 고사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시 주석의 언급은 신랄함을 넘어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스스로를 유비에 투영한 시 주석이 웃어른으로서 미련한 철부지 아들 **유선(트럼프)**에게 훈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종국에 무능한 유선이 촉나라(미국)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조롱이 서려 있다.

동양의 지적 전통인 《삼국지》를 아는 정치인이라면 심각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상황이었으나, 트럼프는 발언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 대두 구매 확대와 관세 합의 등 표면적인 ‘거래 성과’만을 자랑하는 우를 범했다. 서구 언론 대다수가 이 경고성 비아냥을 읽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프랑스 기업가 출신 지정학자 아르노 베르트랑의 날카롭고도 유쾌한 포스팅을 소개한다.

[다극화포럼 편집위원회]

아르노 베르트랑 (@RnaudBertrand)

트럼프와 시진핑의 통화 내용을 담은 중국 측 발표문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그 안에는 트럼프가 도저히 알아차리지 못했을 법한, 겹겹의 함의가 담긴 대단히 정교한 중국 고전 인용이 늘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시진핑은 트럼프를 고전적 통치술을 함께 논하는 학자처럼 대하며 말하는데, 정작 상대방은 “그래서 다음 시즌에 대두 2,500만 톤을 사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이건 정말 엄청난 양의 콩입니다!”라고 답하는 꼴입니다.

이번 통화가 특히 더 재미있는 이유는 중국 측 발표문(fmprc.gov.cn)에서 시 주석이 트럼프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행하는 것이 옳고,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행하는 것은 그르다.”

이 격언은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출처를 이해하고 나면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사실 이 말은 삼국시대 촉한의 전설적인 황제 유비가 죽기 직전,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유선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악이 작다 하여 이를 행하지 말고, 선이 작다 하여 이를 하지 않지 마라. 오직 어짊과 덕만이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勿以恶小而为之,勿以善小而不为。惟贤惟德,能服于人)

유비는 왜 이 말을 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그의 아들 유선은 능력이 평범하기 짝이 없고 성품이 나약하기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의 속뜻은 기본적으로 이렇습니다. “네가 특출나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기본적인 도덕성만이라도 유지해라. 판돈(나라의 운명)이 너무 크지 않으냐.”
  2. 당시 촉한의 기반은 매우 불안정했고 안팎으로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군사적 패배로 국력이 쇠하고 민심이 흔들렸으며, 외부적으로는 위나라와 오나라라는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맨손에서 시작해 인덕(人德)과 도덕적 권위로 일어선 유비는, 만약 후계자가 최소한의 품위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라는 전체 구조가 무너질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예상하는 대로입니다. 아버지가 남긴 말은 유선의 머릿속을 완전히 스쳐 지나갔고, 촉한은 멸망했습니다.

유선의 아명은 **’아두(阿斗)’**였는데, 오늘날까지도 그의 이름은 ‘구제 불능의 무능함’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업어줘도 못 가는 아두(扶不起的阿斗)”라는 유명한 성어가 있을 정도죠. 중국에서 누군가에게 “너는 아두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심한 모욕입니다.

공정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중국인조차 발표문만 보고 이 출처를 바로 알아채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작은 선이라도 행하고 작은 악이라도 하지 마라”는 그저 일상적인 성어일 뿐이니까요. 물론 그 자체로도 시 주석이 트럼프에게 “기본적인 예의(품위)를 지키라”고 타이르는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사적 배경을 꿰뚫어 보는 이들에게 이 인용은 파괴적일 만큼 정교합니다. 시진핑의 연설문 작성자들이 이번에 제대로 밥값을 했다고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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