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만 4년을 채웠다. 2026년 과연 전쟁은 끝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는 사이 새로운 전쟁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미·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목전이다. 이 시간 이후 언제 시작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의 상황은 당장 제2차 대전과 같은 전격전이나 대규모 기동전을 상상해선 곤란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무기는 전사의 본질’이다. 무기, 무기의 기술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술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전장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작년 이번 전쟁의 최대 규모급 전투였던 포크롭스크 함락을 두고 이런 분석이 나왔다. “포크롭스크, 나토 전쟁 교리의 장례식. 거대한 대대전술단(BTG)이 활개 치던 시대는 끝났다. 서방이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대규모 전차, 중앙집권적 지휘, 공중 우세에 기반한 교리는 이 새로운 분산형(distributed) 전쟁 앞에서 붕괴했다. 오늘 우리가 보는 것은 서로 연결된 마이크로 노드(micro-nodes, 2~4명)들로 구성된 군대다. 포크롭스크가 그 증거다. 하나의 도시 요새가 융단폭격으로 무력화된 것이 아니라, 거의 보이지 않는 마모와 소모(wear and tear)로 무력화되었다. 수백 개의 마이크로 전투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전진으로 연결된다. 나토는 이에 맞설 카드가 없다. 그들의 융단폭격 전략은 이미 죽었다.”(Alternative News, 2025.11.17. X 포스팅)
그렇다. 상시 쌍방의 정찰자산 특히 드론이 공중을 맴돌고 있는 조건에서 심지어 분대급 기동조차 전멸을 초래할 뿐이다. 그래서 등장한 전술적 혁신이 2인조, 3인조 마이크로 노드 전투다. 목표는 ‘돌파’가 아니라 ‘침투’다. 침투 후에 상대가 한쪽으로 쏠리면, 노드에 연결된 드론이나 포를 통해 무자비한 폭격이 일어난다. 그러니 전선마다 긴 시간이 소요된다.
우크라이나 전장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요건이 소모전(war of attrition)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좌표상 정해진 지점을 돌격, 장악하는 것은 더 이상 소모전의 방식이 아니다. 좌표상에 있는 적 ‘전투력’을 제압하는 것이 목표다. 방어병력이 소멸되면 그 진지는 저절로 자기 것이 된다는 개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얼핏 보기에 교착처럼 보이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는 말이다.
아래 그림1은 미 전쟁연구소(ISW)의 전선 개관이다. 이제는 많이 알려졌다시피 미 군산복합체의 자금 지원을 받는 ISW는 전황 분석뿐만 아니라 전쟁의 내러티브를 설계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확전, 속전(續戰)파 네오콘 연구소다. 미국의 네오콘 ‘성가정(Holy Family)’ 케이건가의 둘째 며느리 킴벌리 케이건이 설립자다. 첫째 며느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 그 자체 중 하나인 빅토리아 눌런드 전 국무차관이다. 전쟁 계속이 목표이니 전황 분석 역시 최대한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래 그림2는 그중에서도 이번 전쟁의 주전장이라 할 동부전선 즉 도네츠크주 북부전선의 2월 현재 전황이다.
지도 우측의 시베르크스는 2022년 개전 이래 근 3년 동안 요지부동이라 할 정도였다. 그러다 작년 11월 이후 함락되었다. 시베르스크가 함락되었다는 말은 이 전쟁의 최종 군사적 목표인 지도 좌측 슬라반스크와 도네츠크주 임시 주도이자 우크라이나 전선사령부가 위치한 크라마토르스크 공략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여기가 함락되면 사실상 이 위로는 지금까지의 초고도 밀집형의 방어선은 더 이상 없다. 광활한 스텝 지역이 펼쳐질 뿐이다. 요컨대 군사적 의미에서의 전쟁이 종착점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소모전 개념은 군사적 전쟁이 끝났다고, 다른 전선 즉 외교와 경제전선이 마무리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정된 전쟁의 ‘정치적’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전쟁은 더 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논자에 따라 2026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렇게 전망하기도 한다. “결국 2026년 두 가지 핵심 결말은 자포리자 포위와 크라마토르스크–슬라반스크 도시권 포위가 될 것이다. 이는 전쟁 전 기준 총인구 120만 명이 넘는 두 지역을 포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포리자 약 70만 명과 슬라반스크·콘스탄티노프카·드루즈코프카 등을 포함한 크라마토르스크 도시권 약 50만 명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카멜레온에 비유한 바 있다. 즉 전쟁의 목적과 목표란 상대와의 교전 과정에서 새롭게 조성된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는 말이다. 포크롭스크 대전투에서 승리한 러군은 드네프르강변의 대도시 자포로제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동남4주에 국한되었던 전장이 확장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내륙국가로 고립될 것인지가 걸린 오데사가 남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수많은 분석과 연구들이 그 사이 홍수를 이뤘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 주목할 만한 정량분석이 하나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 워릭 파웰(Warwick Powell) 교수의 분석이다. 아래 그 분석결과이다.
“2025년 11월부터 2026년 2월까지의 데이터를 통합한 추정에 따르면, 이 전환점은 지금으로부터 3∽6개월(2026년 5~8월) 사이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후 3∽4개월에 걸쳐 기능적 고갈로 이어지는 연쇄 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는 ‘둑이 무너지는’ 시점까지 6∽9개월의 시간 지평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을 보자.
“러시아는 하루 700∽900단위의 순증을 통해 68만∽70만 규모의 전력을 유지하며 과도한 확장 없이 점진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아직 동원되지 않은 유사 규모의 예비군도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월 초 기준 45만∽50만 단위(11월 55만에서 감소)로 시작해 하루 -100∽900단위의 순감소 궤적을 보이며, 이는 미묘하게 누적되다 임계점에서 급변한다. 유럽이 2026년 약 150억 달러 규모로 계획한 우크라이나 필수전쟁물자 우선요구목록(PURL)에 따른 지원은 하루 50∽100단위를 일시적으로 보충해 1∽2개월을 연장할 수 있으나, 예컨대 전 세계적으로 월 60발 수준인 패트리엇 미사일 생산량으로는 러시아의 10:1 화력 우위를 상쇄할 수 없다… 이는 러시아가 오데사로 진격해 이를 확보하고, 더 나아가 키이우의 정권 교체를 촉진할 수 있는 위치에 설 가능성을 열어준다. 필자 개인의 추정으로는, 이 두 조건이 충족될 때야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 국면에 들어설 것이며, 그때 비로소 단순한 항복 조건을 넘어 러시아의 관점에서 지역 안보 구조를 재설계하는 핵심 조약들에 대한 협상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병력 소모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누적된 피해와 충격이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는 시점이 향후 대략 3∽6개월 (2026년 5∽8월)사이가 될 것이며, 그 이후 3~4개월 (2026년 8월∽11월)에는 연쇄 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래 그림 3은 이를 그림으로 재구성한 것이다.(위 분석 원문 등은 https://multipolarityforum.kr을 참조할 것)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하반기가 되면 자포로제시와 동부전선의 슬라반스크-크라마토르스크 포위 작전이 개시될 전망이다. 즉 우크라이나군의 작전적 붕괴 시점과 거의 접근할 시점이다. 물론 이 파웰의 추정치(estimation)는 크게는 나토군의 전면 개입, 작게는 현재 징집에서 제외된 18∽24세까지 대학생 등 우크라이나 청년층의 징집 등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러시아의 승리는 사실 거의 확정적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영·독·불 이른바 E3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평화비토, 전쟁계속주장으로 협상을 통한 평화는 여전히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영, 불 중심의 우크라이나 핵무기 공급설까지 등장할 정도로, 러의 승리를 E3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태세다.
하지만 미국 없는 유럽이 독자역량만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및 자금 지원은 사실 난망하다. 외부 지원 없는 우크라이나만의 전쟁 수행은 더더욱 가능성이 낮다. ‘전직 대통령’ 젤렌스키 정권은 현재 ‘어떤 상황에서도 패배하는 상황’(‘No Win situation’), 즉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이중구속(double bind)’의 조건이다. 그만큼 이미 패배한 전쟁을 하루라도 더 끌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더 절실해졌다. 가장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의 보도에 의하면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평화안 논의를 다시 거부하고, “전쟁을 3년 더 계속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해 측근들조차 황당하게 만들었다 한다. 이에 발맞추어 국제 네오콘계 매체와 연구소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패배한 것도 아니다’는 식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엉터리 통계들을 동원해 일제히 전쟁계속을 종용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등장한 것이 ‘우크라이나 필수전쟁물자 우선요구 목록(PURL)’이다. 이미 외교부는 ‘검토 중’임을 밝혔고, 이에 러시아는 ‘비대칭 보복조치’를 선언한 상태다. 윤석열 레거시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성 지원이다. 심지어 친위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참전설조차 한때 나돌곤 했다. 이미 소위 미국이 ‘구매’하는 방식으로 대량의 살상용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우회 판매되었고, 또 1억 달러의 지원도 이루어졌다. 현재 우리는 이 전말을 알지 못한다. 판매된 무기 특히 155밀리 포탄의 양이나 금액은 물론이고, 1억 달러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극도로 부패한 우크라이나 지도층의 뱃속으로 들어갔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성격의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럼 과연 PURL이 무엇인지 짚어보자.
첫째, PURL이 과거와 다른 점은 예컨대 인도적 지원 등 우리가 선택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지정한 전쟁물자를 미국으로부터 구입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재고 중에서 보내는 방식이다. 미국은 이로써 또 동맹에게 ‘부담 전가(burden-shifting)’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하고 돈도 버는, 꿩 먹고 알 먹는 식이다.
둘째, 영국의 전 총리 보리스 존슨이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를 아주 요령 있게 정리해 준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패배는 곧 ‘서방패권(western hegemony)’의 몰락이기 때문이란다. 영·독·불 3국 등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연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패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한국의 ‘패권’과 1이라도 관계가 있을까. 미국이 한국에 이 목록에 가담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미국의 무기를 한국 돈으로 사서 우크라이나에 넘기라는 말이다. 그 핵심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이 미국산 무기를 사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 우리의 ‘패권’이 걸린 전쟁이 아닌 마당에 약간의 외교상식이라도 갖추었다면, 사실상 패배한 전쟁에 그것도 ‘받고 더블(double down)’ 할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셋째, 그래서 PURL ‘검토 중’이라는 외교부의 접근은 하나의 정책옵션을 ‘검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국익에 대한 판단을 외주화한 채, 그저 미국의 국익에 조건반사적으로 ‘자동정렬’하면서 충성맹세를 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스스로 자기 이익을 판단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나라는 주권국의 핵심조건에서 결격사유에 해당된다. 국민‘주권’정부의 책임있는 부처가 아니란 말이다. 마치 유전병처럼 때만 되면 되살아나는 저 사고 관성은 이제 고질 중 고질이 되었다.
넷째, PURL의 실효성을 따져 보더라도 위에서 본 추정치에 따르자면 고작 “1∽2개월” 전쟁 연장 효과에 불과하다. 이것을 위해 스스로 주변 열강 중 하나와 대결함으로써 외교적 위기를 자초하고, 남북한 안보딜레마를 더 강화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다섯째, 이는 스스로 ‘전략적 자율성’의 무덤을 파는 꼴이다. 여기서 전략적 자율성이란 미·중 사이에서 한 번은 이쪽, 다른 한 번은 저쪽에 서자는 것도, 혹은 ‘균형’이란 이름으로 양쪽 사이에서 줄타기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책공간(policy space)’ 혹은 ‘전략적 기동공간’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사안별, 시기별로 ‘확장’해 나가자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전략적 자율성이란 한국 외교의 자율적 공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 국익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을 전제한다. 며칠 전 미8군 사령관이 한국의 동의 없이 서해안에 미군 전투기를 띄워 중국 공군이 출동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한국 국방장관이 이에 항의하자 8군 사령관이 사과했다.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동맹’의 개념이 변했다. 비용전담자로 말이다. 기존의 ‘보호와 충성’의 전통적 도식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동맹은 비즈니스다. 이 조건에서 ‘공간관리’로서의 전략적 자율성은 한국 외교의 필수 조건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PURL은 전략적 자율성을 스스로 폐기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