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권 전복 작전은 어떻게 (현재로서는) 좌절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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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단계: 모사드(Mossad)는 이란 대중의 항의 운동을 촉발하기 위한 ‘영향력 공작망(Influence Array)’을 구축했다.
구상: 지도부 제거와 동시에 쿠르드 세력이 침공하고, 이란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대체 지도부를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제동: 밴스(Vance) 부통령은 반대했고, 에르도안은 트럼프를 설득해 쿠르드군의 침공을 저지했다.
현황: 전쟁의 종지부를 찍으려 했던 작전은 현재로서는 실행되지 않았다.

나훔 바르네아, 로넨 버그만 | 업데이트: 26.04.25 | 21:47

40일간의 교전 끝에 이란과의 전쟁을 종결지으려 했던 작전은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이스라엘 측 관계자들은 모두 깊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왜 실패했는가? 미국 파ט너들이 처음부터 작전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음을 바꿨기 때문인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구상 자체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판타지였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란 정권 전복 작전은 이번 전쟁의 거대한 동력이자, 결코 실현되지 않은 ‘절대적 승리’의 핵심이다. 이는 정보, 군사, 정치적 차원의 방대한 서사다. 여기에 공개되는 세부 사항은 군 검열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지난 1월 이란 내 시위 모습. 정권은 정보 당국을 놀라게 할 정도의 폭력으로 대응했다.

이란 정권 전복에 대한 구상은 올메르트 정부 시절 메이르 다간(Meir Dagan)의 모사드 재임기부터 싹텄다. 당시 아이디어는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비밀리에 포섭된 내부 인사를 앉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보 공동체 수뇌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 구상에 매료되었다. 그는 2023년 총리직에 복귀하자마자 정권 전복을 위한 ‘기성 계획(off-the-shelf plans)’이 있는지 반복해서 확인했다.

이 아이디어가 다간, 네타냐후, 그리고 오늘날의 모사드 수뇌부를 매료시킨 이유는 자명하다. 정교하고 은밀한 단 한 번의 작전으로 호메이니주의 이란이 제기하는 모든 위협, 즉 핵, 미사일, 그리고 프록시(대리 세력)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네타냐후는 밀어붙였고, 모사드는 열광했으나, 군 정보국(Aman)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스라엘은 수년간 중동 내외의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해 왔으며, 대개 모사드가 그 중심에 있었다. 가장 중요한 시도는 메나헴 베긴 총리 시절 바시르 제마옐을 레바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려 했던 사례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고, 이는 이스라엘 안보 시스템에 일종의 경고이자 교훈으로 남았다. 비밀 정보기관의 수단으로 역사를 바꾸려 시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교훈 말이다.

타이밍이 이스라엘과 맞지 않았다. 올해 1월의 민중 항의 시위 | 사진: Getty

당시의 경험 이후 레바논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 “베이루트의 테러리스트가 어디 사는지 알고 싶다면 모사드에 묻고, 레바논이 어디로 향할지 알고 싶다면 다른 이들에게 물어라.” 이 격언은 아마 이란에도 적용될 것이다.

다디(다비드) 바르네아는 2021년 모사드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란은 수년간 조직의 주된 작전 지역이었다. 바르네아 국장은 이전까지 부수적이었던 분야, 즉 이란 대중 내부에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s)’을 전개하는 분야에 극적인 변화를 명령했다. 이 분야는 그 아래에서 대(對)이란 작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정권은 고위층을 이용해 위에서부터 무너뜨릴 수도 있고, 대중 시위와 소수 민족의 무장 저항을 육성해 아래에서부터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두 가지 옵션을 동시에 선택했다. “닭의 목을 치는 동시에 다리를 삶는” 격이었다.

‘영향력’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는 그 노력의 규모와 정교함을 다 담아낼 수 없다. 독기로 가득 찬 정권에 맞서 이스라엘은 자신들만의 ‘독극물 기계’를 구축했다. 이 조직화는 4년 전 시작되어 2년 반 전 작전적 성숙 단계에 도달했다. 이는 풀가동될 경우 소셜 네트워크의 경계를 훨씬 넘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무기 체계와 같다. 만약 이런 체계가 정권을 전복시킬 시위를 촉발할 수 있다면, 설령 정권이 무너진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 독재자의 기관총에 학살당할 시위대 역시 고려해야 한다.

낙관론과 야망의 만남. 지난 2월 회담 중인 트럼프와 네타냐후 | 사진: 아비 오하이온

2024년 9월의 ‘북쪽 화살(Northern Arrows)’ 작전과 2025년 6월의 ‘젊은 사자(With All One’s Might)’ 작전은 의사결정 과정의 중대한 이정표였다.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과 안보 수뇌부는 실행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났다. 수천 개의 삐삐를 한순간에 폭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스라엘의 자신감은 미국인들이 전적으로 우리와 함께한다는 믿음에도 근거했다. 미국은 수백 명의 자국 군인과 CIA 요원을 살해한 헤즈볼라에 수년간 복수를 원해 왔다. 나스랄라와 헤즈볼라 수뇌부 제거는 그들에게 피의 원한을 갚는 일이었다. ‘젊은 사자’ 작전은 미국 측에 이스라엘 군 정보국, 공군, 모사드의 역량을 완전한 파트너로서 근거리에서 지켜볼 기회를 제공했다. 미 행정부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량에 대한 열광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계획의 모든 부분에 동의했는가? 그 시험대는 나중에 찾아왔다.

조기 실행의 대가

‘젊은 사자’ 작전 종료 시점에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에 대한 두 가지 실존적 위협인 핵과 미사일이 영원히 제거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만큼 화려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안보 기관들은 이를 직시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전문가들은 이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중 폭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설령 경이로운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교전 주기를 불러올 뿐이며, 이는 10월 7일 이후 우리가 빠지지 않기로 맹세한 수렁이었다. 이 마법의 굴레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정권 전복뿐이었다.

당초 계획은 2026년 6월 전쟁을 목표로 했다. 그때까지 준비를 마치고 여건을 성숙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올해 1월, 수만 명의 이란인이 그들만의 타이밍에 맞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스라엘이 쏟아부은 방대한 작업이 이 시위의 배경이 되었다. 이 항의 운동이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누군가는 ‘아직’이라고 말한다), 멀리 떨어진 플로리다 마라라고의 트럼프 별장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란 정권은 정보 당국을 놀라게 하고 세계를 경악시킬 정도의 폭력으로 대응했다. 신뢰할 만한 추정치에 따르면 7,000~8,000명의 시민이 살해되었다. 트럼프는 “도움이 가고 있다”고 선언했고, 이는 중대한 개입의 약속이 되었다. 이란인들은 이를 주목했고 이스라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는 미 중부사령부(CENTCOM)에 걸프 지역으로 병력을 파견할 것을 명령했다. 네타냐후는 IDF와 모사드에 작전 시기를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은 3월 초 군 정보국 방문 당시 이를 언급했다. “연말 작전을 계획했으나, 이란 내부 상황과 미국 대통령의 입장이라는 변수로 인해 2월로 앞당길 필요가 생겼다.” 시기를 앞당긴 것에는 대가가 따랐다.

정권 전복 계획은 전체 전쟁 계획의 핵심이자 심장이었다. 시위와 학살이 절정에 달했던 1월 16일, 바르네아 모사드 국장은 미국으로 향했다. 그는 군복을 입은 자들과 입지 않은 자들 모두에게 계획을 브리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정권 전복을 포함한 계획 전체가 제시되었다. 미 중부사령부는 IDF 동료들로부터 이 계획을 학습했다. 참모총장은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미 행정부는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행정부가 모든 단계에 전적으로 동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앙카라로부터의 벨소리

2026년 1월 3일, 신속한 특수부대 작전을 통해 미국 측 피해 없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부인 플로레스가 궁전에서 납치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CIA가 조종하는 새로운 통제권이 확립되었다. 이 작전의 성공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신감을 증폭시켰다. 트럼프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군사 시스템의 능력에 한계가 없다고 확신했다. 트럼프의 낙관론은 네타냐후의 야망과 만났다. 이란 정권 전복은 네타냐후에게 일생의 과업이자 꿈의 실현, 그리고 10월 7일 실패에 대한 압도적인 응답이었다.

쿠르드 셈법. 에르도안 | 사진: 로이터

2월 11일, 네타냐후는 백악관을 방문했다. 상황실(Situation Room)에서 열린 회의에서 보안 화상 통화 화면에 이스라엘에서 발언하는 바르네아 모사드 국장이 등장했다. 바르네아는 계획의 모든 부분을 대통령에게 브리핑했다.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트럼프는 테헤란에서도 베네수엘라식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 네타냐후는 트럼프와 자신이 완전히 같은 주파수에 있으며,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귀국했다. 모든 구성 요소에 대해 ‘녹색 불(승인)’이 켜진 것으로 보였다.

다음 날, 이스라엘 측 없이 대통령과 미 행정부 고위직들만 모인 같은 방에서 정권 전복 계획의 세부 사항이 논의되었다.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이 회의 내용은 매기 하버먼과 조나단 스완의 저서(뉴욕타임스 발췌본)를 통해 폭로되었다.

정권 전복 계획은 복합적이었다. 이스라엘 공군의 정밀 폭격으로 최고 지도자와 정부 수뇌부를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스라엘 국가 역사상 최초로 국가 원수 암살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트럼프는 다른 입장이었다. 미국 법은 대통령의 외국 지도자 암살 권한을 제한한다. 이스라엘이 실행하는 한 트럼프는 책임에서 자유로웠고, 그는 제거 계획을 반겼다.

공중 작전 100시간 후, 정권 전복을 위한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이 단계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이라크로부터 쿠르드 민병대의 지상 침공이다. 최근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방문한 외신 기자들은 침공군에 합류한 지휘관들과 전사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먼저 이란 내 쿠르드 지역에 진입한 뒤, 이란계 쿠르드족과 합세하여 수도 테헤란으로 대규모 진격을 감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4년 말 시리아에서 지하드 민병대가 며칠 만에 바샤르 알 아사드 군대를 궤멸시켰던 상황이 이란에서도 재현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쿠르드, 벨루치, 아와즈 세력이 벌이는 대규모 조직화에는 비밀이 거의 없었다.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 정보국은 침공 계획을 사전에 입수하여 터키 정보국과 공유했다. 터키 정보국은 이를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에르도안은 친구인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에르도안은 이 ‘태산명동서일필(태산이 울렸으나 쥐 한 마리 나오는 격)’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두 번째 축은 이란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를 촉구해야 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이 구축한 영향력 기제들이 시위를 독려할 계획이었다. 정권의 보안 경찰인 바시즈(Basij) 군대는 공중에서 타격받아 무력화될 예정이었다.

세 번째 축은 대체 지도부의 수립이었다.

전쟁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이란 지도부는 제거되거나 암살 공포로 자취를 감췄다. 지휘 통제 시스템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듯 보였다. 낙관론에 휩싸인 트럼프는 이란인들에게 거리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네타냐후도 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하늘에서는 폭탄이 떨어지고 있었고, 지상에서는 혁명수비대가 거리로 나오는 누구든 스파이로 간주해 즉결 처형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전쟁의 임계점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정권에 대한 증오를 이겼다. 군중은 집에 머무는 것을 택했다. 나중에 재개하겠다는 명분 하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시위 독려 방송은 일제히 중단되었다.

쿠르드족의 침공 역시 난관에 봉착했다. 이미 2월 12일 백악관 회의에서 밴스 부통령, 루비오 국무장관, 래트클리프 CIA 국장은 정권 교체 계획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루비오는 이 계획을 “헛소리(bullshit)”라고 불렀고, 래트클리프는 “광대극(farce)”이라고 칭했다. 트럼프는 귀를 기울였다.

트럼프가 선호하는 인물, 무니르 | 사진: 로이터

정권 교체라는 개념은 트럼프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혼돈이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베네수엘라에서 증명했듯, 그는 정권을 ‘교체’하기보다 ‘굴복’시키기를 원한다. 망명 중인 야권 세력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팔레비 국왕의 아들과의 면담도 거부했다.

그때 앙카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에르도안은 쿠르드족, 이스라엘, 나토(NATO), 그리고 미국과 결산할 그만의 계산서가 있었다. 그는 쿠르드족이 전쟁의 승리자로 등장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는 터키, 이라크, 이란의 영토를 잠식하는 쿠르드 독립 국가 건설 요구를 재점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트럼프의 마음을 두고 네타냐후와 경쟁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날 때 터키가 강대국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지역 패권국’의 지위에 오르길 원했다. 군사력과 백악관 내 입지를 앞세운 이스라엘은 그의 경쟁자이자 적수였다. 네타냐후는 3월 12일 이스라엘이 이제 “지역 패권국이자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 강대국”이라고 선언했고, 에르도안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에르도안의 전화는 트럼프를 설득했다. 트럼프는 쿠르드군이 국경을 넘기 직전, 그리고 공군이 이란 내부로 진입할 통로를 열기 위해 폭격을 시작한 직후에 침공 중단 명령을 내렸다.

이스라엘은 복종했다. 작전 계획 단계에서 이스라엘은 주도적이었고, 테헤란 상공에서 그들은 대등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전쟁 4일째, 백악관에서 내려진 첫 번째 중대 결정 앞에서 이스라엘은 소외되었다. 그 순간부터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급감했다. 이는 MAGA 운동 내부에서 전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정권이 붕괴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 처음부터 전쟁을 원치 않았던 밴스와 신속한 작전을 원했던 루비오는 실패의 책임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았고,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을 겨냥했다. 네타냐후는 트럼프와 미국을 이용하려 한 인물로 묘사되었고, 정권 전복 계획은 대가가 따르는 판타지로 치부되었다.

워싱턴의 거부권과 민중 시위의 부재, 쿠르드 침공 무산에도 불구하고 바시즈 검문소에 대한 공습은 계속되었다. 목표 설정의 괴리는 이스라엘 내부의 작전 논의에서도 쟁점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공격 때문에 공군이 핵 시설이나 미사일 창고 같은 더 중요한 목표 타격을 미뤄야 했다고 주장했다. 목표 우선순위 결정(군사 용어로 TPI – 일일 타격 계획)은 이스라엘 체제 내에서 매일 논쟁의 대상이었다. 의견이 충돌할 때 최종 결정권자는 참모총장이었다.

‘3일’의 오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의 생존 능력을 과소평가한 채 전쟁에 돌입했다. 지도자 제거는 정권의 근간을 흔들었으나, 하메네이가 남긴 유언에 따른 질서 있는 권력 승계를 막지는 못했다. 폭격도 지휘 통제 체계의 복구를 저지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정권은 호르무즈 해협의 위력을 이용해 전쟁의 국면을 바꿨다. 미국인들은 이 조치와 그에 따른 엄청난 경제적 여파에 대비하지 못했다. 전쟁 전 모든 정보 평가에서 해협 봉쇄 가능성이 언급되었음에도 왜 당황했는가? 한 가지 가능한 답은 트럼프가 정권이 며칠 내로 붕괴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점이다. 전쟁 초반 트럼프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에게 참전을 요청했다. 스타머가 다음 주에 다시 논의하자고 하자, 트럼프는 답했다. “다음 주는 안 돼! 전쟁은 3일 안에 끝날 거야.”

정권 전복 문제와는 별개로, 모사드와 IDF는 전쟁 중 매우 인상적인 전술적 성과를 거두었다. ‘사자의 포효’ 작전은 이전의 ‘젊은 사자’ 작전과 마찬가지로, 적진 깊숙한 곳에서 확보한 고품질 정보와 이를 실시간 타격 목표로 전환해 파괴하는 공군의 강력한 결합을 증명했다. 군 정보국과 8200 부대가 제공한 아야톨라 정권 심부의 정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수백 명의 모사드 요원들이 공군의 타격을 돕기 위해 미사일 관련 차량, 정권 고위직, 수많은 바시즈 검문소를 식별하고 촬영했다. 며칠간의 폭격 끝에 바시즈 대원들은 더 이상 검문소에 서 있기를 거부했다.

명령만이 빠졌을 뿐

전쟁 4일째, 기적이 일어나지 않자 안보 기구 내부에서는 왜 실패했는지, 그리고 기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방이 시작되었다. 이 공방은 다국적, 다지역적이었다. 쿠르디스탄의 산맥에서 이스라엘의 작전실, 워싱턴의 상황실까지 이어졌다. 40일 전쟁이 길어지고 상대적인 결과가 드러날수록 논쟁은 격화되었다. 이는 930일 전인 2023년 10월 7일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천일 전쟁’에 대한 더 넓은 논쟁과 맞물렸다.

모든 전쟁의 피날레는 내러티브(Narrative)다. 우리가 이겼는가 졌는가? 누가 뛰어났고 누구의 잘못인가? 누가 ‘콘셉시아(과거의 고정관념)’에 빠졌고 누가 통찰력을 발휘했는가? 네타냐후는 전쟁 초기 핵과 미사일 제거와 함께 ‘정권 교체’를 3대 목표 중 하나로 전격 수용했다. 이는 모사드가 추진한 핵심 목표였다. 반면 IDF의 표현은 달랐다. “정권 교체가 가능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는 말장난이 아니다. 가자 전쟁 초기부터 IDF는 전쟁 목표 설정에 있어 매우 신중했으며 절대적인 목표 제시를 피했다. 네타냐후는 상황과 성공 확률에 따라 이 두 가지 표현 사이를 오갔다.

에피 데프린 IDF 대변인은 3월 15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권 체제에 대한 타격을 심화하고 있다. 군대로서 우리의 목표는 정권 전복이 아니다. 하지만 이란 국민들이 스스로 국가를 되찾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그 이후의 일은 이란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전쟁 5일째부터 네타냐후는 모사드의 표현보다 군의 표현을 우선시했다. 정권 전복은 ‘지상 과제’에서 ‘축복받을 가능성’으로 격하되었다. 그 실현 책임은 타인에게 전가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준비한 정권 전복의 기회가 사실상 소진되었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쿠르드 침공을 막은 트럼프를 탓할 것이고, 누군가는 모사드의 과도한 야망을 탓할 것이다.

현재 논쟁의 초점은 타임라인에 있다. 양측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다. 한쪽은 “100시간 후 온다던 붕괴는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다른 쪽은 “붕괴는 3단계에서 일어날 예정이었다. 트럼프가 2단계에서 우리를 멈춰 세웠고, 그 후 휴전이 우리를 막았다. 3단계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오직 명령만이 빠졌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뿌리 깊고 잔혹하며 무자비한 정권을 가진 9,000만 인구의 국가를 이스라엘의 계획만으로 전복시키는 것이 애초에 가능했는가? 존재하지도 않는 신기루를 위해 막대한 노력을 쏟아부은 것은 아닌가?

미래를 위한 교훈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정권 전복에 사활을 걸었던 이들은 미국이 이란과 합의를 시도하는 모습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최상의 경우에도 합의는 핵 프로젝트만 중단시킬 뿐, 미사일과 지역 테러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합의가 오히려 정권에 안정과 면죄부를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제재 해제로 유입될 수백억 달러는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고, 미사일에 재투자되며,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이라크 민병대 같은 프록시들을 재건하는 데 쓰일 것이다. 이란 국민의 정권 교체를 돕겠다며 시작된 전쟁이, 결국 정권의 결속을 다지고 내부 반대파들의 숙청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원대하고 상상력 풍부하며 결정적인 해결책으로 보였던 이스라엘의 행보는 깊은 실망감으로 끝나가고 있다. 이 계획을 추진했던 이들에게 남은 것은 다시 전쟁의 불꽃이 타오르길 바라는 희망뿐이다.

최초 게시: 2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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