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판의 말’에서 ‘혈액팩’으로?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이 인도에 던지는 함의

57

인도가 해야 할 일은 바퀴를 새로 발명하는 것(쓸데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건국 전통의 핵심 개념인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2026년 5월 14일 목요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천단공원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걷고 있다. 사진: AP/ 마크 시펠바인(Mark Schiefelbei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방중이 인도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이번 방문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는 데 있다. 지난 5월 17일 백악관 웹사이트에 공개된 미중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양자 관계에 대한 미국 측의 가장 눈에 띄는 새로운 공식 규정은 “건설적이고 전략적이며 안정적인 미중 관계(constructive strategic and stable China-US relationship)”라는 표현이다. 이는 영문 자구를 포함해 중국 측의 정식 표현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이는 워싱턴이 대외 전략에서 패러다임 차원의 전환을 완료했음을 강력히 시사하며, 인도에 전방위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

미국의 그랜드 전략(Grand Strategy) 전환의 완성을 고하는 트럼프의 방중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전 10년 동안,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관통하는 기저의 논리는 비교적 명확했다. 즉, 동맹국, 준동맹국, 파트너국을 동원해 중국을 공동으로 봉쇄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공고히 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 트럼프 1기의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 바이든 행정부의 ‘작은 마당과 높은 울타리(small yard, high fence)’ 정책은 본질적으로 모두 동일한 논리의 변주에 불과했다.

이러한 프레임워크 아래에서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핵심적인 장기판의 말(chess piece)로 간주되었다. 미국이 정책 슬로건을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변경한 것도 상당 부분 인도의 중추적 역할을 부각하기 위함이었다. 이 같은 미국식 배열의 본질은 ‘체스판의 말 모델(chess piece model)’이다. 즉, 미국이 동맹국과 파트너국에 안보 공약, 기술 지원, 시장 접근성, 나아가 현금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들의 지경학적 협력, 나아가 순종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하위 파트너국 입장에서 이는 미국이 부여한 역할만 충실히 수행한다면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보장을 얻어 맹주에 편승(band-wagoning)함으로써 중국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체스판의 말 모델’을 지탱해 온 전제들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트럼프 2기에 접어들어 중국과의 수 차례에 걸친 무역 전쟁, 반도체 봉쇄, 해상 제한 조치에 따른 비용이 백악관 앞에 고스란히 놓이게 되었다. 희토류 공급망 차질, 농산물 수출 가치의 폭락, 그리고 대중국 기술 금지 조치가 오히려 중국의 핵심 분야 기술 돌파를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미국은 중국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이 실익보다 실책이 훨씬 큰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했으며, 차라리 중국과의 공존을 위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은 자연스럽게 지역 내 ‘체스판의 말들’에 투자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데 흥미를 잃었다. 트럼프의 이번 방중은 이러한 중대한 변화를 재확인하는 계기였다. 방중 기간 동안 미중 양국이 도달한 합의는 돌파구 마련식의 관계 해빙이 아니라, ‘경쟁 속 안정 유지’라는 프레임워크 차원의 합의였다. 이는 미국이 자국의 외교 전략적 초점을 ‘어떻게 하위 파트너들을 동원해 중국에 맞설 것인가’에서 ‘어떻게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가’로 전환함으로써 대외 전략의 축을 완전히 옮겼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선택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혈액팩 모델(blood bag model)’이다. 이제 중국과의 정면 대결로는 이익을 낼 수 없게 되자, 미국은 하위 파트너국들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을 악용하여 이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수혈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미국은 이들 관계를 전환해 파트너국들이 자국에 지속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고, 그 의존성의 대가로 막대한 프리미엄을 지불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체스판의 말 모델’과 ‘혈액팩 모델’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동맹국들이 여전히 부분적인 자율성을 가진 장기판의 말 대접을 받지만, 후자의 경우 이들은 단지 반복적으로 착취당하다가 사용 후 버려지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이 구분을 명확히 이해해야만 현재와 미래의 국제 정세에서 나타나는 겉보기에 모순적인 현상들을 해독할 수 있다. 즉, 미중 양국이 표면적으로는 완화(détente, 데탕트)의 신호를 계속 발신하면서도, 미국이 하위 파트너국과의 개별 양자 회담에서는 안보적 위협 수사를 지속적으로 격상시키는 현상의 배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현상 뒤에는 명확한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중국이 더 이상 공포스러운 위협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면 하위 파트너국들은 불안감의 원천을 잃게 되고, 미국 역시 동맹국들의 피를 말릴(bleed) 명분을 잃게 된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과의 공공연한 정면 충돌을 원치 않는데, 이는 충돌이 필연적으로 수반할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선책은 중국과 ‘긴장되되 통제 불능에 빠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맹국들이 느끼는 위협 인식을 지렛대(leverage) 삼아 안보 분담금(보호비)을 갈취하는 것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트럼프의 방중 이후 미국 대외 정책 전반의 향방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인도가 직면한 실질적 위험

미국의 대외 전략 패러다임이 일단 전환되면, 인도가 직면한 주요 위험도 그에 따라 변하게 된다. 중국을 인도의 가장 큰 외부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인도 내에서 매우 흔한 통념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인도가 실제로 겪은 외부적 충격과 압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돌이켜본다면, ‘중국을 최대의 적’으로 취급하는 관점이 전략적 상상력의 부재에서 비롯되었거나 의도적으로 조성된 환상에 눈이 먼 결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오도된 인지는 인도의 주위를 가상의 위협에만 묶어두는 반면, 더 크고 실질적인 위협이 인도에 반복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다면 인도가 직면한 진짜 위협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미국이 ‘혈액팩 모델’ 하에서 인도에 가하는 4중의 충격(quadruple shocks)이다.

첫 번째 충격은 에너지 부문이다. 가장 가시적인 사례는 최근 이란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대이란 군사 타격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인도가 입을 타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인도는 액화석유가스(LPG)의 90%, 액화천연가스(LNG)의 절반 이상, 그리고 원유 공급을 이 수로에 의존하고 있다. 갈등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대이란 제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인도가 할인된 가격의 이란산 원유를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개인적 친분을 자주 과시함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에 대해서는 전례 없이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인도의 원유 구매를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sanctions, 제3자 제재)과 연계했을 뿐만 아니라, 25%의 징벌적 관세까지 부과했다. 이러한 행보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기저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고 일관되다. 이란 갈등이 어떻게 귀결되든, 그리고 미러 관계가 화해로 접어들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인도처럼 준비되지 않은 국가들이 고도로 할증된 가격의 미국산 오일과 가스를 강제로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도가 수입 대금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동안,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은 최대의 승자가 되었다. 이는 지정학적 갈등에서 파생된 에너지 위기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제조된 의존성 위기(dependence crisis)다.

두 번째 충격은 무기 판매(방산) 부문이다. 종종 미국의 많은 지리전략적 기동이 인도를 겨냥한 것이 아닐 때조차도, 그것이 일련의 지역 갈등을 촉발함으로써 인도를 ‘안보 불안-무기 조달’이라는 굴레로 밀어 넣었다. 인도를 유인해 히말라야 국경 지대에서 중국과 대치하게 만든 ‘인도-태평양 전략’이든, 남아시아 지역 갈등에서 미국의 신뢰를 이용해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이간책을 쓴 것이든 모두 이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군수업체들을 등에 업은 미국은 즉각 ‘악화되는 지역 정세’를 지렛대 삼아 F-35와 같은 터무니없이 비싼 무기를 인도에 매각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인도의 파트너로 접근하면서 의도적으로 인도의 안보 불안을 증폭시킨 뒤, 그 불안을 ‘완화’해 줄 해독제를 파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이 불을 지르고 소화기를 가져와 가격을 매겨 팔아넘기는데도, 소화기를 사는 쪽은 여전히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꼴이다.

세 번째 충격은 기술적 압박(technological squeeze)이다. 이는 앞선 두 가지 충격보다 훨씬 무겁고 심대하며, 해결하기에도 훨씬 까다롭다. SWIFT 네트워크, 인공지능(AI) 연산 능력, 클라우드 서비스, 반도체 및 핵심 운영체제(OS)에 이르기까지 인도는 이 모든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적 백업(대체재)이 거의 전무하다. 오랜 기간 미국은 인도에서 지속적으로 인재를 흡수하며 영구적인 두뇌 유출(brain drain)을 유발해 왔으면서도, 인도가 자체적인 토착 기술 및 산업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다.

예컨대 인도의 성장세에 있는 글로벌 역량 센터(GCC, Global Capability Centers) 산업은 미국의 백인 칼라(사무직) 일자리 창출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잠재적 우려 때문에 조만간 미국의 주요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의 첨단 서비스 산업을 억제하려는 이러한 정책 논리는 이미 트럼프의 H-1B 비자 정책에서 극명하게 입증된 바 있다. 미국의 ‘혈액팩 모델’이 본격 가동되면 인도가 미국 측으로부터 부과될 수 있는 다양한 ‘세컨더리 제재’, ‘데이터 준수 조치’, ‘안보 심사’에 더욱 취약해질 것임은 자명하다.

네 번째 충격은 자본 유출(capital extraction)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이 인도를 압박하고 유인하여 미국을 향한 막대한 투자 공약을 이행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압박을 받는 ‘혈액팩’이 인도만은 아니다. 일본, 한국, 대만 역시 이를 비껴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이미 완전한 산업화를 이루고 국내에 잉여 자본을 보유한 경제권과 비교할 때 인도는 여전히 경제 도약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국내 자본이 극도로 희소하고 소중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도에서 빠져나가는 돈 한 푼 한 푼은 다른 혈액팩들에 비해 훨씬 높은 기회비용을 수반하며, 결과적으로 훨씬 더 큰 파괴적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전략적으로 보다 독립적인 국가로서 인도는 미국의 압박에 더 잘 저항할 수 있어야 했다. 문제는 인도의 많은 이익집단이 이미 미국과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압박이 가해지면 이들 집단의 이익은 인도의 국익보다는 미국의 국익과 동조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인도가 이미 심각한 국제수지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인도 부호들이 해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겠는가? 루피화 자산을 달러로 전환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회피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은 물론 그들 자신의 사익에도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충격을 종합해 보면 그 이면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즉, 미국은 인도의 근본적인 이익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이에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인도의 안보 환경, 에너지 공급 차질, 기술적 적자, 자본 유출을 전혀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악화시키고 이용할 뚜렷한 유인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체스판의 말 모델’과 ‘혈액팩 모델’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장기판의 말은 최소한 기능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 주어야 하지만, 혈액팩은 흔히 다 빨아먹고 버려지기 마련이다.

인도의 현실적 선택: 진정한 위협의 식별

점증하는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첫걸음은 성급하게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인지적 경로의 재배치, 즉 누가 진짜 적대자인지 식별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인도의 전략적 담론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분법적 내러티브에 갇혀 있었다. ‘중국은 위협이므로 중국이 인도에 행하는 모든 것은 부정적인 함의를 지니는 반면, 미국은 파트너이므로 미국의 행동은 인도에 더 유익하다’는 식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감정적으로는 매끄럽게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실제 현실은 정반대일 수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현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누가 인도를 돕고 누가 착취하는지는 명백해진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년간 인도의 가전 산업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며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이니셔티브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되었다. 또한 인도에 추가적인 외화를 벌어다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인도의 가전 산업 부흥은 중국의 자본, 기술, 인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품 및 자재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토대로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이분법적 내러티브’에 눈이 멀면 인도의 산업 부흥에 기여한 중국의 필수적이고 형성적인(formative) 기여를 간과하기 쉽고, 오직 무역 적자만을 바라보며 이를 중국의 착취 증거로만 치부하게 된다.

이와 똑같은 논리가 의약품 원료(API), 태양광 부품, 가전제품 부품에도 적용된다. 유감스럽게도 인도의 많은 이들은 중국이 제공하는 이 거대한 추동력을 체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작성한 대본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무역 적자’와 ‘의존성 위험’이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왜 베트남은 인도처럼 ‘대중국 적자’를 불평하지 않으며, 왜 멕시코는 ‘의존성 위험’을 원망하지 않는가?

반면, 미국과 인도 사이의 우호적이라고 여겨졌던 상호작용은 결국 터무니없이 비싼 화석 에너지, 고가의 무기 체계, 상시적인 두뇌 유출, 그리고 관세 폭탄, 이민 제한, 아웃소싱 규제, 심지어 언어적 모욕의 지속적인 위협으로 실현되었다. 한쪽에는 정치적 조건 부여를 최소화하면서 인도의 산업화를 위한 빌딩 블록(기반 요소)을 제공하는 중국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인도를 ‘혈액팩’처럼 수확하려는 미국이 있다.

그러나 인도의 많은 이들은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곧 한 세대 전체가 대외 전략적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잘못 설정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정이 수반하는 심리적 비용은 매우 크며, 이것이 바로 인도의 전략 분석 커뮤니티에서 진정한 성찰이 극도로 제한적이었던 일차적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은 결코 심리적 위안에 보상하지 않는다. 오직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에만 보상할 뿐이다. 성찰을 회피한다고 해서 도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도전은 더욱 잔인한 방식으로 테이블 위에 다시 돌아올 뿐이다.

사실 인도가 해야 할 일은 바퀴를 새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건국 전통이 지닌 핵심 개념인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모든 사안에서 타협을 일삼는 전략적 태만이 아니며, 강대국들을 기계적으로 균등하게 대우하는 평등주의적 처신도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선입견에도 눈멀지 않은 채 오직 국익에 기반하여 철저한 명확성을 확보하고, 손익을 정확히 따져본 뒤 그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 첫째, ‘혈액팩 모델’ 아래 가동되는 미국의 위험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과 정면 대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미국이 ‘체스판의 말 모델’에서 이탈한 이상, 미국과 필요한 안보적 거리를 유지해야 함을 뜻한다. 이를 위해 인도는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사결정의 당연한 전제나 출발점으로 삼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대신 산업 발전, 외교 전략, 무기 조달, 에너지 수입, 금융 인프라 등 핵심 분야에 ‘방화벽(firewalls)’을 구축하여 미국의 잠재적 간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도는 워싱턴의 사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정책적 차원에서 전략적 자율성이란 본질적으로 외부의 위해와 강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둘째, 중인(Sino-Indian) 협력을 위한 보다 견고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 중국은 인도에 안보 보장(guarantees)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가로 전략적 순종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이익들이다.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산업화 솔루션, 신뢰할 수 있는 인프라 역량, 광대한 시장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정치적 조건이 붙지 않은 투자가 포함된다. 당연히 이러한 혜택이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대가로 인도는 신뢰할 수 있는 정치적 확약이 뒷받침된 명확하고 투명한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경제 및 무역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제대로 충족되지 못해 상당한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는 부분이다.
  • 셋째,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G20과 같은 다자적 플랫폼을 활성화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이러한 플랫폼들이 달러 패권 체제나 서구 주도의 국제 질서에 직접 도전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진짜 가치는 인도에 신뢰할 수 있는 대안적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수년간 인도는 이러한 비서구권 포럼에서 종종 스스로를 ‘중국의 대항마’로 포지셔닝해 왔으며, 때로는 서구에 자신의 차별성을 증명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이제 역효과를 낳고 있다. 결국 인도가 미국의 압박에 직면했을 때, 중국과의 실효성 있는 협력이 부재하다면 인도는 실질적인 대안 카드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탈출구(exit option)의 존재는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는지 여부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결론

트럼프의 방중은 하나의 거울이다. 그것이 투영하는 바는 단순히 미중 관계의 구체적인 미세 조정이 아니라, 미국의 대외 전략에서 발생한 패러다임 차원의 대전환이다. 인도에게 이제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지평을 향한 경로를 개척할 수 없다.

미중 갈등에서 어떻게 이익을 취할지, 혹은 워싱턴으로부터 어떻게 더 많은 공약을 짜낼지 계산하는 식의 ‘체스판의 말 모델’적 사고에 계속 의존하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인도의 과다출혈(hemorrhaging)을 악화시킬 뿐이다.

진정한 전략적 명확성이란 기존의 의존 체제가 지닌 실질적 위험을 인정하고, 진짜 적대자가 누구인지 식별하며, 감정과 내러티브가 아닌 철저히 국익에 기반하여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적 선택지들을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길은 고될 것이나, 이를 회피할 때 치러야 할 대가는 훨씬 더 가혹할 것이다.

저자 소개

마오커지(Keji Mao)는 국제협력센터(International Cooperation Center) 애널리스트이자 ‘남아시아 연구 브리프(South Asia Research Brief)’의 설립자이며, 하버드-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의 객원 연구원이다.

Related post

팍스 실리카(Pax Silica) 논쟁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에게…리야드의 중심에서 전하는 메시지

트럼프, 이란과의 전쟁 재개 태세 갖춘 듯

실무 총괄이 폭로한 미·중 정상회담의 ‘빈껍데기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