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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갱도에서 열린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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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죄와 주체적 용서의 변증법

역사는 때로 잔인한 침묵으로 기록된다. 1942년 일제의 군국주의가 광기에 달했던 그해 아시아 곳곳의 탄광은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4월 26일 중국 만주국 번시후(本溪湖) 탄광에서 발생한 가스 폭발 사고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다. 폭발 직후 일본인 관리자들은 불길을 잡고 시설을 보존한다는 미명 아래 환기구를 차단하고 입구를 밀폐했다. 갱도 안에 갇힌 수천 명의 광부들은 산소 부족으로 서서히 질식해 갔다. 공식 집계된 1,549명의 사망자 중 절대다수인 1,518명은 강제 동원된 중국인과 조선인이었다.

이 비극은 두 달 전인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조세이(長生) 해저탄광에서도 예견된 것이었다. 해저 갱도가 무너지며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일본 측은 2차사고 방지를 명분으로 입구를 콘크리트로 봉인했다. 183명의 광부 전원이 수장되었고 그중 136명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었다. 사고는 철저히 은폐되었고 진실은 수심 43m 아래 가라앉았다. 2025년 8월 일본 시민단체의 노력 끝에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과 유골 일부가 발굴되었다. “사람보다 석탄이, 생명보다 전쟁 자원이 우선”이었던 시대가 남긴 처참한 흔적이다.

조세이와 같은 해저탄광이 또 있다. ‘지옥섬’이라 불리는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의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軍艦島)다. 500-8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어 다수가 현장에서 숨졌다. 2015년 7월 일본은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인 강제동원 일본 광산이 또 있다. 1,500명에서 2,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곳이다. 사도금광(佐渡金山)이다. 2015년의 군함도 때와는 달리 윤석열 정부는 사도광산의 2024년 7월 세계유산 등재 시 일본의 요구에 대해 별다른 조건 없이 동의해 주었다.

1월 13일 나라현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조세이 탄광 유해 수습을 위한 실무 협의에 합의했다. 이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의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냉철한 분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조세이 탄광 문제를 의제로 수용한 것은 그들이 역사적 과오를 전면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세이 탄광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한일 ‘과거사’ 문제는 아니다. 한일 ‘과거사’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 및 인권 침해에 대해 양국이 서로 다른 역사 인식과 법적 해석을 가짐으로써 발생하는 외교적, 사회적 갈등을 통칭한다. 조세이 탄광 사고는 조선인이 희생된 과거의 일이었을 뿐, 일제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하는 ‘과거사’ 문제는 아니다. 일본은 이를 인도적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일본이 이 문제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받은 것이다. 이대통령은 “오랫동안 방치된 조세이 탄광 희생자들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자 인도적 과제”라며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일본에게 이 사안은 불법성이나 국가 책임과 무관한 사안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조세이 탄광 문제는 작은 것을 내주어 큰 것을 지키기 위한 ‘통제 가능한 양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일본은 이것으로 ‘과거사를 전면 회피하던 국면은 끝났다’는 신호를 주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를 전면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대신 법적 책임, 배상·사죄,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정치적, 법적 비용이 거의 없는 양보다. 그 선을 넘으면 일본 보수 정치와 외교 전략은 구조적으로 붕괴한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담화를 크게 정리하면 다섯이다. 1993년 관방장관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05년 고이즈미 담화, 2010년 간 나오토 한일강제병합 100주년 담화, 그리고 2015년 아베 담화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의 강압적 간여를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식민통치의 불법성, 국가의 법적 책임, 배상에 대해서는 발언을 회피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언급한다. 지금까지 일본이 행한 최고수위의 사과다. 고노 담화보다 언어적으로 한 단계 나아갔지만 제도는 그대로다. 두 담화 모두 선을 넘지 않았다.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국가 배상 책임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고이즈미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의 재확인이다. 새로운 진전은 없다. “이미 충분히 사과했다”는 인식이다. 간 나오토 담화는 한국을 명시해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아베 담화는 사과의 종결 선언이다. “역대 내각의 사과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사과를 ‘간접화’했다. “우리 아이들과 손주 세대에게 사죄를 계속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다카이치는 아베의 후계자다. 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무라야마 담화 수준의 언급은 어림도 없다. 독일처럼 완벽한 사과와 보상은 일본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랬더라면 일본은 우리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이웃이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한국 정부의 문제도 작지 않다. 국가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과거사 해결을 선포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2015년 12월말 외무장관 윤병세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선언이나, 윤석열이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인 2023년 3월 발표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은 모두 가해자와 국가가 손잡고 피해자를 소외시킨 사례다. 미국이 팔을 비틀어 굴복한 결과이기도 했다. 둘 다 피해자의 고통을 두 번 살해하는 행위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신애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러 교도소에 가지만 범인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아 평안하다”고 미소 짓는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신을 통해 면죄부를 받는 상황, 이 부조리한 풍경은 한일 과거사 합의의 모습과 판박이다. 신애가 부르짖는다. “아니 너한테 죽은 내 아들이나 내가 널 용서한 일이 없는데, 너 같은 개새끼가 어떻게 용서를 받아? 그리고 하나님이 지가 뭔데 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너 같은 새끼를 용서해주고 지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에 함몰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베트남은 우리와 미국을 상대로 과거사를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다. 1994년 베트남의 레득아잉 주석이 한승주 외무장관에게 “앞날이 구만리인데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자”고 했던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물론 이는 베트남이 승전국으로서 가졌던 심리적 우위와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승리자였기에 과거를 통제할 힘이 있었다.

우리는 승전국은 아니어도 일본에 대해 심리적 우위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미래 지향적인 주체성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본이 제대로 사죄하고 책임지지 않는다고 계속 분노하고 스트레스를 키우는 것은 우리 손해다. 에너지 낭비다. 일본이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한계일 뿐,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결단’은 오로지 우리 국민과 피해자들만이 내릴 수 있는 권리다.

정부는 일본에 대한 용서를 종용하거나 ‘화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부는 끝까지 일본의 책임을 강조하고 역사적 진실을 요구하는 ‘깐깐한 변호인’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며 피해자의 곁을 지킬 때 비로소 국민들은 안심하고 과거의 질곡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여유를 갖게 된다.

진정한 대국(大國)의 면모는 가해자의 옹졸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국민의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일본보다 더 큰 도덕적 그릇을 가진 대인(大人)으로서 과거를 응시하되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 정부는 정의를 외치고 국민은 관용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 그것이 우리가 과거를 극복하고 진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길이다.

2026년 1월 14일 이경렬 (전직 외무무 공무원, 다극화포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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